본문 바로가기
기고(칼럼) 인터뷰

[교육 칼럼] 고독하면 진실해진다

by 서울일보 2022. 2. 7.

김수동 (배려연구소 소장)

 

 사람은 고독한 동물이다. 대니얼 디포(Defoe, D.)가 쓴 소설의 주인공,

로빈슨 크루소우(Crusoe, R.)는 타고 가던 배가 난파되어 무인도에 홀로 표류되었다.

 

그는 외롭고 고독했다. ‘동의보감(東醫寶鑑)’을 지은 허준도 의술을 펴는 것에 충실했지만, 때로는 고독했다.

살면서 고독이 필요한 이유는, 고독할 때 사람은 진실해지기 때문이다. 대중과 함께 있을 때는 혼자 있을 때보다 꾸미거나, 과장하게 되고 거짓마저 생겨난다. 고독은 고립과 다르다. 고독은 홀로 있음을 느끼는 일이다.

30여년 전, 필자를 중학교 교사, 대학 강사로 추천해 준 분이 계시다. 스승이신 고송(孤松) 임한영(林漢永) 박사다. 고송이란 외로운 소나무다. 공부하는 사람은 특히 외롭고 고독하다. 결혼식 주례도 선생님이 해주셨다. 선생님은 가방을 들고 늘 걸어다니셨다.

지금도 가끔 수업후 캠퍼스를 걷고 계신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임종하기 1주일전에 롯데백화점 식당가에서 만나 식사를 같이 했다. 식당가를 한참 둘러보시더니 메밀국수를 선택하셨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선생님의 검소한 모습이었다.

필자는 선생님이 돌아가신 날을 분명히 기억한다. 눈발이 날리던 크리스마스 전날 밤,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이었다. 선생님은 강의실에서 늘 학생들에게 경어를 썼다.

 

선생님은 쉬지않고 많은 제자들 취직을 시켜주셨다. 교사, 교수, 회사원 등... 지금도 기억나는 선생님의 말씀이 있다. “내가 Y대에 ○○○을 취직시켜주고 나서 커피 한잔이라도 얻어마셨으면 사람이 아닙니다” 대학교수로 제자를 추천해주셨고 임용되었다는 말씀이다.

정말 많은 제자들을 추천해서 취직하는데 도움을 주셨다. 제자들과 만나서 식사하고 차마시며 대화나누는 것이 즐거움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고독하셨을 듯 싶다. 고독한 소나무. 고독과 소나무는 잘 어울린다.

서양 프랑스 철학자 루소는 스위스에서 태어나 태어나면서부터 어머니를 여의었다. 아버지는 죄를 짓고 외국으로 피신했다. 고아로 자라면서 평생 고독했다.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도 못했으며 결혼조차도 못했다.

그러나 그는 고독을 사랑했다. 고독한 자연인! 루소가 생각한 바람직한 인간상이다. 고독했기 때문에, 사랑과 정(情)이 충만했다. 고독했기 때문에, 독자들의 마음을 울리는 ‘고백록’을 쓸 수 있었다. 루소가 죽었을 때, 그의 곁에는 동거했던 하녀 테레즈뿐이었다고 전한다.

조선시대 세자 책봉에 반대하던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은 제주로 유배를 가다가 남해안 끝자락에서 배를 타기 전에 모든 것을 내려놓으며 가슴저미는 고독함을 느꼈다.

위로는 송나라의 유학자 주희(朱熹), 아래로는 율곡, 세종, 효종을 생각하며 회한에 젖어 마치 제주에서의 죽음을 연상하는 듯한 슬픈 마음을 노래했다. 열심히 공부하고 헌신적으로 정치했지만 결국 송시열은 사약을 마시고 죽었다.

어떤 영화, 소설보다도 슬픔을 자아내게 만드는, 그가 남긴 1편의 시조는 송시열의 외로움을 공감하게 만든다. 지는 인생의 허망한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자신의 제자였던 봉림대군, 효종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눈물짓는 송시열에게서 연민마저 느끼게 된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비록 그가 자연스럽게 죽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삶을 느끼고 맛보았다. 고독함으로 말미암아 삶은 성숙해진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는 제주 유배지에서 교육에 헌신하고 추사체를 낳았다. 8년 3개월간의 유배생활에서 추사는 수제자 이상적(李尙迪)의 의리를 보았다.

언제 죽을지모르는 아무 권력도 희망도 없는 스승에게 귀한 책을 자신에게 선물한 것에 너무 감사했다. 그림 세한도(歲寒圖)가 말해주듯이 삶의 의미를 깨달았다. 가운데에는 초라하고 허름한 집이 있다. 왼쪽에는 잣나무 2그루와 오른쪽에는 소나무 2그루가 있다. 잣사무와 소나무처럼 변하지 않는 제자의 정으로 인해 추사의 인생은 의미가 있었다. 추사의 진솔한 고독은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듣는 우리들의 마음속에도 추사와 이상적의 만남이 살아 움직인다. 그가 대정향교에 써준 현판 의문당(疑問堂)에서 지금도 교육에 관한 그의 통찰을 엿볼수 있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1801년 천주교 박해사건 신유박해(辛酉迫害)에 연루되어 경상도로 유배가던 중 충주 하담에 들러 눈물로 쓴 이별의 시를 남겼다.

“아버님 어머님 우리 가문이 모두 허물어졌고 겨우 목숨만 보전되었습니다. 아들 낳았다고 기뻐하셨고 정성껏 길러주셨는데 죄인되어 유배갑니다.”라는 내용이다.

 

그는 전라남도 강진 유배지 다산초당에서 외로운 10년을 보냈다. 주민들조차 기피했지만, 그는 초라한 자신의 거처에 사의재(四宜齋)라는 현판을 걸고 자신의 생각, 모습, 언어, 행동을 삼가면서 살았다. 고독은 다산을 더욱 진솔되게 만들었다. 고독으로 말미암아 다산은 조선 최고의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실패, 좌절, 고난은 우리에게 고독을 안겨 준다. 그 고독으로 삶은 한층 성숙해진다. 반면에 고립은 사회적 관계의 단절을 말한다. 고립이 지나치면 고집 세고 부적응하게 될 수 있다.

고독은 충분히 삶에 의미가 있다.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도 하루 5분 정도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 소설 속 인물이지만, 앞서 언급한 크루소우는 홀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는 고독한 사람이다. 스웨덴에는 ‘혼자가 가장 강하다(Being alone is string).’는 말도 있다.

고독을 즐기거나 견디는 법을 배운다. 삼성(三星) 고(故) 이건희(李健煕) 회장은 교제를 나누는 것보다 고독을 즐겼다. 명진규의 ‘청년 이건희’에 따르면, 집무실 겸 영빈관인 서울 한남동 승지원(承志園)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이건희는 고독을 통해서 생각을 정리했다.

 

가끔 지나친 고독은 죽음에 이르게도 한다.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 곧 죽음이다. ‘손정의 미래를 말하다’에서 보면, 실제로 일본 동경에서만, 혼자 살다가, 혼자 쓸쓸히 죽는 ‘고독사(孤獨死)’가 대략 5,000건이다.

이것은 지나친 병적(病的)인 고독을 말한다. 우울증(憂鬱症)이 지나치면 자살에 이르게도 한다. 1년에 1만 5천명이 자살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건전한, 감당할만한 삶의 고독은 진정한 가치가 있다. 고독은 인생을 숙성시킨다.

 

김수동 프로필

​현, 배려연구소장
전, 숙명여대 교수

 


<출처/서울일보>